
시편 69편 30–36절 (개역개정)
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높이리니
31
이것이 황소 곧 뿔과 굽이 있는 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32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는 너희 마음이 살아날지어다
33
여호와께서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에게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34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에 모든 동물이리로다
35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에 살며 소유를 삼으리라
36
그의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살리로다
시편 70편 (개역개정)
1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해를 즐겨하는 자들이
물러가 치욕을 당하게 하소서
3
나를 향하여 “하하” 하는 자들이
자기의 수치로 말미암아 물러가게 하소서
4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며칠 전, 씨디님에게서 톡이 왔다.
다시 일을 같이 할 수 있겠느냐는 연락이었다.
저번처럼 재택으로 하면 된다고 했다.
처음엔 마음이 흔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은
지금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 병행이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일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다.
이 일을 할 때 가끔은 한가한 날들도 있었고,
어쩌면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아이를 온종일 돌보고 있음에도
‘내가 돈을 벌지 않는다’는 구조 안에 있으니
자존감이 괜히 낮아지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남편이 “그럼 네가 돈 벌던가”라고 말했던 기억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계속 고민했다.
검색도 해보고,
나눔을 계속 하면서 신앙적인 관점에서도
이 선택을 바라보려고 애썼다.
그 과정에서 점점 분명해진 생각은 이것이었다.
지금 이 시기는 다시 오지 않는,
아이에게 너무나 중요한 시기라는 것.
이 시기만큼은
다른 무엇보다 아이에게 집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제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다. 모두 족하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이미 주님께서 주신 것들이 충분하다는 고백이
아주 조용하게 마음에 내려앉았다.
큐티 말씀도 그 생각을 더 분명하게 해주었다.
시편 69편 말씀 중,
굽달린 황소를 바치는 것보다
전심으로 드리는 찬양을 기뻐하신다는 대목이
유독 마음에 와닿았다.
지금 주님께서 원하시는 건
더 많은 결과나 성과가 아니라
내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계속 나눔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마음에 깊이 남은 말이 하나 있었다.
정말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거절해도 하나님이 다시 하게 하실 거다.
그 말이 이상하게 나를 놓이게 했다.
붙잡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던 불안이
조금씩 힘을 잃었다.
내가 매달려야만 유지되는 일이라면
지금 내 삶을 위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치과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버스를 타고 왕복 세 시간,
대기까지 포함해 네 시간 반 가까이 걸리는 일정이었다.
그날 집에서는 남편이 아이를 보고 있었는데,
아이가 낮잠을 잘 못 잤던 모양이었다.
그때 남편에게서 온 톡은
아이의 상황을 나누기보다는
나를 탓하는 말에 가까웠다.
그 순간 마음이 크게 요동쳤고,
감정이 격해져 나도 강하게 반응하고 말았다.
마음은 엉망이었지만
씨디님께 답장을 더 미룰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감정의 한가운데서
씨디님께 일을 거절하는 톡을 보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직전,
속으로 분명히 이렇게 하나님께 말씀드렸던 것 같다.
주님,
이 선택과 그 이후의 결과를
제가 아니라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이상하게도
카톡을 보내고 나서 찾아온 것은
불안이 아니라 평안이었다.
아쉬움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마음이 더 이상 분주하지 않았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 분명했다.

집에 돌아온 이후
남편은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상황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긴장이 낮아진 건 분명히 느껴졌다.
그리고 어제,
내가 방장으로 있는 오픈 톡방에서
선배 아빠가 아이 재우는 루틴 이야기를 해줬다.
루틴을 적용하니 훨씬 잘 잔다는 이야기였다.
오늘부터 바로 적용해봤다.
불을 다 끄고 보조등 하나만 켜고,
자장가를 틀고,
지금은 자는 시간이라는 걸 인지시켜주며
쪽쪽이를 물리고 토닥토닥했다.
잘 안 될 때만 아주 잠깐 안아주고
다시 내려놓는 방식으로.
30분 정도 걸렸지만
아이를 낮잠 두 번 모두 재우는 데 성공했다.
젖물리지 않고 재운 것도 의미가 컸다.
이제 젖니도 올라오고 있고,
언제까지 이렇게 재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이건 반복하면 더 빨라지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하루의 질서가 하나 생긴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늘 큐티 말씀, 시편 70편.
오늘 내가 정의한 ‘주님의 승리’는 이것이다.
상황이 완벽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께 맡겼더니
마음에 평안을 주신 것.
남편이 한층 누그러진 것,
루틴 속에서 아이가 잘 자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중요한 선택 앞에서
주님께 묻고 결단했다는 감각.
잠깐 스쳐 지나간 생각도 있었다.
‘이렇게 아이가 잘 자는데,
어쩌면 일도 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곧 다시 알게 되었다.
그랬다면 내 마음은 분명 다시 분주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당장 무언가를 더 붙잡기보다,
주님 안에서
지금 내게 맡겨진 몫과
지금은 내려놓아도 되는 몫을 분별하며
내 삶의 속도를 다시 주님께 맞추고 싶다는 마음.

빈 시간에는
내게 맡겨주신 일들—
블로그를 쓰고, 교회 일을 하고,
천천히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마감에 쫓기지 않는 방식으로
삶을 세워가고 싶다.
오늘의 결론은 분명하다.
승리를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이 평안이 바로 주님의 승리입니다.
매일 말씀 앞에서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제게 참으로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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